일상 드라마 | 힐링 소설
바쁘게만 살아온 당신에게도 잠깐 멈춰 서서 마음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요?
성공만을 위해 달려온 30대 직장인 김하늘. 번아웃으로 인한 휴직이 가져다준 것은 뜻밖의 선물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돌아간 고향 마을에서 할머니의 따뜻한 품, 소꿉친구와의 재회, 그리고 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하나씩 발견해가는 하늘의 이야기.
때로는 천천히 가는 것이 더 빠른 길일 수도 있다는 것을, 혼자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따뜻한 성장 스토리입니다.
읽기 시간: 약 15-20분 | 완결
1장. 고향으로
가을 햇살이 기차 창을 통해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김하늘은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도시의 회색빛 건물들이 점점 사라지고 노란 들판과 빨갛게 물든 산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 정거장은 청송입니다."
안내 방송이 울려 퍼지자 하늘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5년 만에 돌아가는 고향이었다.
한 달 전, 하늘은 회사 사무실에서 쓰러졌다.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의사는 완전한 휴식을 권했다. 처음에는 억울했다. 과장 승진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고, 맡고 있던 프로젝트도 중요한 단계에 있었다.
하늘: "3개월 휴직이라니... 이럴 시간이 어디 있어."
하지만 몸은 정직했다. 매일 반복되는 두통과 불면증, 그리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감. 결국 하늘은 휴직계를 내고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기차에서 내린 하늘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서울의 매연 냄새와는 전혀 다른, 흙과 풀의 향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작은 간이역은 예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다만 사람이 많이 줄어든 것 같았다.
할머니가 마중 나와 계실 줄 알았는데 보이지 않았다. 하늘은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려다가 멈췄다. 예전에는 이 길을 걸어서 집까지 가곤 했었다. 오랜만에 걸어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로 향하는 길은 추억으로 가득했다. 친구들과 함께 뛰어다니던 골목길, 여름이면 물놀이를 했던 개울, 그리고 할머니 손을 잡고 산책하던 뒷산길까지. 모든 것이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그런데 마을에 들어서자 가슴이 아려왔다. 예전에 북적이던 상점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집들도 많이 비어있었다. 젊은 사람들은 다 도시로 떠나고 어르신들만 남은 듯했다.
하늘이 골목을 걸어가다가 갑자기 멈춰 섰다. 모퉁이에 작은 카페가 하나 생겨있었다. '달빛정원'이라는 간판이 예쁘게 걸려있었다. 마을에 카페라니, 신기했다.
문득 카페 안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하늘은 눈을 크게 뜨며 가까이 다가갔다.
"설마..."
카페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나왔다. 키가 크고 단정한 인상의 그는 하늘을 보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준서: "하늘아? 정말 너야?"
하늘: "준서 오빠... 여기서 뭐해?"
이준서. 하늘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첫사랑이었다. 졸업 후 서울로 떠나면서 연락이 끊겼던 그가 이곳에 있다니.
준서: "여기서 카페를 하고 있어. 너는 어쩐 일로? 서울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들었는데."
하늘: "아... 잠깐 휴가 차 내려왔어."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할 말이 너무 많은데 동시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준서: "할머니께 인사드리러 가는 거지? 나도 함께 가도 될까? 할머니께서 너 올 거라고 하시더라."
하늘: "그래? 할머니가?"
준서: "어제 우연히 만났는데, 하늘이가 내일 온다고 하시면서 정말 기뻐하시더라."
둘은 나란히 걸으며 할머니 집으로 향했다. 예전처럼 자연스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반가웠다. 준서는 5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고향으로 돌아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할머니 집 마당에 들어서자 정말 오랜만에 보는 한옥의 정취가 하늘을 감쌌다. 할머니가 키우시는 국화들이 담장 가득 피어있었고, 감나무에는 주황빛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할머니: "우리 하늘이가 왔구나!"
할머니가 마루에서 환하게 웃으며 팔을 벌리셨다. 하늘은 달려가 할머니를 꼭 안았다. 할머니의 품에서는 여전히 그 옛날의 따뜻한 냄새가 났다.
할머니: "많이 말랐네, 우리 하늘이가. 서울에서 고생이 많았구나."
하늘: "괜찮아요, 할머니. 이제 좀 쉬려고요."
할머니: "그래, 그래야지. 준서야, 고마워. 우리 하늘이 데려다주고."
준서: "천만에요, 할머니. 하늘아, 내일 시간 되면 카페에 놀러 와. 할머니 좋아하시는 호두 쿠키도 구워놨어."
하늘: "고마워, 오빠."
준서가 떠나고 할머니와 단둘이 남자, 하늘은 비로소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마루에 앉아 감나무를 바라보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서울에서는 이런 여유를 가져본 지가 언제였을까.
할머니: "밥 먹었니? 할머니가 된장찌개 끓여놨어."
하늘: "아직 안 먹었어요."
할머니: "그럼 어서 들어와서 먹어라. 너 좋아하는 김치전도 부쳐뒀어."
오랜만에 맛보는 할머니 음식은 눈물이 날 만큼 맛있었다. 하늘은 밥을 먹으면서 그동안 얼마나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했는지 깨달았다. 편의점 도시락과 배달음식으로 때우던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할머니: "천천히 먹어라. 아무도 빼앗아가지 않아."
할머니의 말에 하늘은 웃음이 나왔다. 언제부터 이렇게 급하게 살게 되었을까. 모든 것을 빨리빨리 해치우려고만 했던 것 같다.
그날 밤, 하늘은 오랜만에 푹 잠들었다. 서울에서는 매일 밤 뒤척였는데, 할머니 집에서는 자장가라도 들리는 것처럼 평온했다.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가을 벌레 소리가 마음을 진정시켜주었다.
2장. 잊었던 시간들
다음날 아침, 하늘은 새소리에 눈을 떴다.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시계를 보니 10시가 넘어 있었다. 서울에서는 7시에 일어나 회사 갈 준비를 하느라 정신없었는데, 이렇게 늦잠을 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할머니: "일어났니? 밥 먹어라."
할머니는 벌써 아침밥을 다 차려놓고 계셨다. 따뜻한 미역국과 밑반찬들이 정갈하게 놓여있었다.
하늘: "할머니, 이렇게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셨어요?"
할머니: "일찍? 나는 6시에 일어났는데. 너만 게으름뱅이지."
하늘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확실히 여기서는 시간이 다르게 흘렀다.
밥을 먹고 나서 하늘은 마을을 둘러보기로 했다. 어제는 준서와 함께여서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혼자 걸어보니 변화가 더 눈에 띄었다. 폐가도 많고, 논밭도 관리되지 않는 곳이 늘었다.
그런데 달빛정원 앞을 지나가니 준서가 문을 열고 나왔다.
준서: "하늘아, 안녕. 산책 중이야?"
하늘: "응, 마을 구경하고 있어. 많이 변했더라."
준서: "그러게... 사람이 많이 줄었어. 커피 한 잔 할래? 할머니 쿠키도 준비했는데."
하늘은 고개를 끄덕이며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깔끔하고 아늑했다. 나무로 만든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벽면에 걸린 책들이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하늘: "직접 인테리어했어?"
준서: "응, 서울에서 건축 일 할 때 배운 게 도움이 됐어. 아메리카노로 줄까?"
하늘: "고마워."
준서가 커피를 내려주는 동안 하늘은 카페를 둘러봤다. 창가에는 마을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고, 한쪽 벽에는 마을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하늘: "사진도 찍어?"
준서: "취미로. 마을 어르신들 모습이나 계절 풍경 같은 것들. 도시에 사는 자녀분들이 가끔 보러 오시더라고."
준서가 내려준 커피는 정말 맛있었다. 서울에서 마시던 커피숍 커피와는 다른, 깊고 따뜻한 맛이었다.
하늘: "맛있다. 근데 손님이 있어? 마을이 이렇게 조용한데."
준서: "낮에는 어르신들이 오시고, 주말에는 도시에서 드라이브 오는 분들도 있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름 단골분들이 계셔."
그때 카페 문이 열리며 작은 여자아이가 들어왔다. 8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는 수줍어하며 준서를 바라봤다.
준서: "지민아, 안녕. 오늘도 그림 그리러 왔어?"
지민: "네..."
아이는 하늘을 보더니 더욱 움츠러들었다. 준서가 하늘에게 설명했다.
준서: "윤지민이라고, 한 달 전에 서울에서 전학 온 아이야. 아빠 혼자 키우시는데, 아직 마을에 적응을 못 하고 있어."
하늘: "안녕, 지민아. 나는 하늘 언니야."
지민이는 작게 고개만 끄덕이고는 구석 테이블로 가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늘은 아이의 모습에서 왠지 어린 시절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하늘: "내가 처음 여기 왔을 때도 저랬어. 낯가림이 심했거든."
준서: "그래? 나는 너를 항상 밝은 아이로 기억하는데."
하늘: "겉으로만 그랬지. 사실 무서웠어, 새로운 환경이."
두 사람은 잠시 조용히 지민이를 바라봤다. 아이는 열심히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하늘: "지민아, 뭘 그리고 있어?"
지민: "우리 집이요... 서울에 있던."
하늘: "보여줄래?"
지민이는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그림을 보여줬다. 아파트와 놀이터,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려져 있었다.
하늘: "정말 잘 그렸다. 서울이 그리워?"
지민: "네... 친구들이 있었거든요."
하늘: "그렇구나. 언니도 서울에서 왔어. 처음에는 나도 여기가 낯설었는데, 지금은 정말 좋아."
지민이의 눈이 조금 반짝였다.
하늘: "내일 할머니 집에 놀러 올래? 할머니가 그림 보시면 정말 좋아하실 것 같은데."
지민: "정말요?"
하늘: "응, 할머니는 그림 보는 걸 좋아하셔."
준서가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바라봤다. 예전의 따뜻했던 하늘의 모습이 그대로 있었다.
카페에서 나온 하늘은 마을을 더 돌아보기로 했다. 예전에 다녔던 초등학교도 가보고 싶었다. 학교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지만 아이들 소리가 예전만큼 활기차지 않았다.
교문 앞에서 한 어르신을 만났다.
박철수: "아, 하늘이 아니냐? 순덕이 할머니 손녀?"
하늘: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세요?"
박철수: "그럼, 어떻게 안 기억하겠니. 나는 박철수 이장이야. 너 대학교 들어갈 때 할머니가 얼마나 자랑하셨는지 몰라."
이장님은 반가워하시면서도 어딘지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박철수: "그런데 학교가 문제야. 아이들이 너무 줄어서 내년에 폐교될지도 몰라."
하늘: "폐교요?"
박철수: "전교생이 20명도 안 돼. 젊은 부모들은 다 도시로 나가고... 지민이네처럼 들어오는 가정도 있긴 한데 턱없이 부족해."
하늘은 가슴이 아팠다. 자신이 뛰어놀던 운동장, 꿈을 키웠던 교실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니.
하늘: "뭔가 방법이 없을까요?"
박철수: "글쎄... 마을을 알릴 방법이 있으면 좋겠는데. 도시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면..."
이장님과 헤어진 후 하늘은 생각에 잠겼다. 서울에서 마케팅 일을 하면서 배운 것들이 여기서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휴식이 우선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할머니가 텃밭에서 배추를 뽑고 계셨다.
할머니: "어디 갔다 왔니?"
하늘: "마을 구경하고 준서 오빠 카페도 갔다 왔어요."
할머니: "그래? 준서가 참 착한 아이야. 아버지 돌아가신 후로 혼자 고생이 많아."
하늘: "할머니, 제가 도와드릴게요."
하늘은 할머니 옆에 앉아 배추를 다듬기 시작했다. 흙이 묻은 손이 어색했지만,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이 좋았다.
할머니: "서울에서는 이런 일 안 해봤지?"
하늘: "네, 마트에서 다 사먹었어요."
할머니: "직접 기른 게 얼마나 맛있는데. 내일 김장도 해야겠다."
그날 저녁, 할머니의 손맛이 담긴 저녁상을 받으며 하늘은 서울에서의 바쁜 일상을 떠올렸다. 매일 야근에 시달리고, 제대로 된 식사도 못 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업무적인 것이 대부분이었다.
여기서는 시간이 다르게 흘렀다. 급하지 않았고,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따뜻했다.
3장. 작은 기적들
일주일이 지났다. 하늘은 점점 마을 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매일 할머니와 함께 텃밭 일을 돕고, 오후에는 준서의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지민이도 하늘이 오면 조금씩 마음을 열어주었다.
하늘: "지민아, 오늘은 뭘 그릴 거야?"
지민: "언니, 저한테 그림 가르쳐줄 수 있어요?"
하늘: "물론이지. 내가 어렸을 때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거든."
하늘은 지민이 옆에 앉아 함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이는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점점 자신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민: "언니는 왜 서울에서 여기로 왔어요?"
하늘: "음... 좀 쉬고 싶어서. 언니도 가끔 힘들 때가 있거든."
지민: "어른들도 힘들어해요?"
하늘: "그럼, 어른이라고 안 힘들까? 지민이처럼 어른들도 가끔 무서울 때가 있어."
지민이는 하늘을 빤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지민: "저도 여기 처음 왔을 때 무서웠어요. 아는 사람이 없어서."
하늘: "지금은 어때?"
지민: "준서 아저씨랑 언니가 있어서 좋아요."
하늘은 아이의 순수한 대답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이런 작은 소통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달았다.
준서: "하늘아, 내일 마을 축제 준비 도와줄 수 있어? 인력이 부족해서."
하늘: "축제?"
준서: "매년 가을에 작은 축제를 해. 수확 감사제 같은 거야. 요즘은 규모가 많이 줄었지만."
하늘: "물론이지. 뭘 도와주면 돼?"
준서: "무대 설치랑 음식 준비. 마을 어르신들이 다 나오셔서 재능 발표도 하고."
다음날 하늘은 마을회관에서 축제 준비를 도왔다. 어르신들이 모여서 각자 할 일을 나누고 있었다. 하늘은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금세 분위기에 어울렸다.
한 어르신: "하늘이가 서울에서 왔다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런 일 안 하는데 기특하네."
또 다른 어르신: "순덕이가 손녀 자랑을 얼마나 하는지 몰라. 회사에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다고."
하늘은 부끄러워하며 웃었다. 할머니가 자신을 얼마나 자랑스러워하시는지 몰랐다.
음식 준비를 하면서 하늘은 마을 어르신들의 삶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각자 어려운 사정들이 있었지만 서로 돕고 살아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김 할머니: "하늘아, 이것 좀 봐. 우리 손자가 보낸 사진이야."
할머니는 휴대폰 속 손자 사진을 보여주셨다. 1년에 한두 번밖에 못 본다고 하셨다.
하늘: "손자분이 정말 똑똑해 보여요."
김 할머니: "그런데 바빠서 연락도 잘 안 해. 하늘이는 효자구나. 할머니한테 이렇게 와서."
하늘은 가슴이 찔렸다. 자신도 바쁘다는 핑계로 할머니께 자주 연락드리지 못했었다.
축제 당일, 마을은 오랜만에 활기찼다. 준서의 카페에서는 특별 메뉴를 준비했고, 지민이는 하늘과 함께 그린 그림을 전시했다.
하늘: "지민아, 그림이 정말 잘 걸렸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어."
지민: "정말요? 부끄러워요."
하늘: "부끄러워할 거 없어. 지민이 그림은 정말 예뻐."
무대에서는 마을 어르신들이 국악 공연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도 나와서 노래를 부르셨다. 하늘은 할머니의 맑은 목소리에 감동받았다.
그런데 축제가 한창일 때 준서가 하늘에게 다가왔다. 표정이 어두웠다.
준서: "하늘아, 잠깐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늘: "무슨 일이야?"
준서: "카페가... 좀 어려워. 손님이 줄고 있어서."
하늘: "얼마나?"
준서: "한 달에 손님이 50명도 안 와. 이러다가는 문 닫아야 할 것 같아."
하늘은 충격을 받았다. 준서가 이렇게 정성스럽게 운영하는 카페가 어려움에 처해있다니.
하늘: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카페가 정말 좋은데."
준서: "고마워. 그런데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거의 없잖아."
그날 밤 하늘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준서의 카페도 그렇고, 폐교 위기의 학교도 그렇고, 마을 전체가 어려움에 처해있었다. 서울에서 마케팅 일을 하면서 배운 것들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늘은 노트북을 켜고 마을 홍보 아이디어를 정리해보기 시작했다. SNS 마케팅, 체험 프로그램, 펜션 연계... 여러 가지 방법들이 떠올랐다.
다음날 아침, 하늘은 준서를 찾아갔다.
하늘: "오빠, 나한테 아이디어가 있어."
준서: "아이디어?"
하늘: "마을을 알릴 방법 말이야. 내가 마케팅 쪽 일을 했으니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하늘은 밤새 정리한 아이디어들을 준서에게 설명했다. 카페 SNS 계정 만들기, 마을 체험 프로그램 개발, 도시민들을 위한 힐링 여행 패키지 등등.
준서: "정말 좋은 아이디어들이네. 하지만 혼자서는 어려울 것 같은데..."
하늘: "나도 도와줄게. 어차피 시간도 있고."
준서: "정말? 하지만 너는 쉬러 온 거잖아."
하늘: "이것도 휴식이야.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거니까."
그때 하늘은 깨달았다. 자신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인지. 단순히 성과만을 위한 마케팅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진짜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때 하늘의 휴대폰이 울렸다. 서울 회사에서 온 전화였다.
김부장: "하늘씨, 몸은 좀 어때요? 혹시 다음 주에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이 있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하늘: "아...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하늘은 복잡한 심경이었다. 서울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4장. 선택의 순간
하늘이 마을에 온 지 한 달이 지났다. 서울 회사에서는 계속 연락이 왔고, 복직에 대한 압박도 느껴졌다. 하지만 하늘의 마음은 점점 마을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마을 홍보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하늘은 준서, 이장님과 함께 계획을 세웠다.
박철수: "하늘이 덕분에 희망이 보이네. 이런 젊은 아이디어가 필요했어."
하늘: "저도 배우는 게 많아요. 서울에서는 숫자와 데이터만 봤는데, 여기서는 사람의 마음을 보게 돼요."
첫 번째로 카페 SNS 계정을 만들고 마을 사진들을 업로드했다. 준서가 찍은 아름다운 풍경 사진들과 지민이의 그림, 그리고 축제 때 어르신들의 모습까지.
준서: "벌써 좋아요가 100개가 넘었어."
하늘: "이제 시작이야. 체험 프로그램도 만들어보자."
하늘은 할머니의 김장 담그기, 어르신들의 전통 놀이 체험, 마을 뒷산 트레킹 코스 등을 기획했다. 도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프로그램들이었다.
그런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생겼다. 어르신들 중 일부는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았고, 젊은 사람들의 유입을 걱정하기도 했다.
한 어르신: "괜히 소란스러워지는 거 아니야? 우리 조용히 살고 있는데."
하늘: "어르신들께 피해가 안 되도록 조심스럽게 하겠어요. 다만 마을이 살아남으려면..."
이장님이 중재에 나서셨다.
박철수: "하늘이 말이 맞아. 이대로 가면 우리 마을이 정말 사라져. 변화가 필요해."
한편 지민이는 하늘과 더욱 가까워졌다. 아이는 이제 적극적으로 마을 아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했고, 학교생활도 즐거워했다.
지민: "언니, 내일도 그림 그릴 거예요?"
하늘: "그럼, 지민이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지민: "저, 친구가 생겼어요. 민수라는 애가 있는데 정말 친해요."
하늘: "정말? 다행이다. 지민이가 밝아진 것 같아."
지민이아빠: "정말 감사해요. 지민이가 이렇게 밝아진 건 처음이에요."
하늘: "지민이가 원래 밝은 아이예요. 조금만 시간이 필요했던 거죠."
그런데 어느 날 하늘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학교 폐교가 거의 확정되었다는 것이었다.
교장선생님: "교육청에서 최종 통보가 왔어요. 내년 3월에 폐교됩니다."
하늘: "정말 방법이 없나요?"
교장선생님: "학생 수가 15명 이상이어야 하는데 현재 12명이에요. 3명만 더 늘어나면 되는데..."
하늘은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지민이를 비롯한 아이들이 어떻게 될까? 학교가 없어지면 아이들은 다른 마을로 가야 했다.
그날 밤 하늘은 준서와 심각한 대화를 나눴다.
준서: "학교 문제 때문에 걱정이 많지?"
하늘: "응. 뭔가 방법이 있을 텐데... 도시에서 아이들과 함께 이주해오는 가족들을 유치할 수 있다면..."
준서: "쉽지 않을 거야. 일자리 문제도 있고."
하늘: "원격근무를 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잖아. 마을에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면..."
준서: "하늘아, 그런데 넌 어떨 거야? 서울로 돌아갈 거지?"
하늘은 대답할 수 없었다. 마음으로는 여기 남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서울의 안정된 직장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늘: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
준서: "솔직히 말해줘. 나는... 나는 너와 다시 시작하고 싶어. 고등학교 때부터 쭉 좋아했거든."
하늘은 가슴이 뛰었다. 자신도 준서에게 다시 끌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늘: "오빠..."
준서: "대답은 안 해도 돼. 다만 너의 진짜 마음이 무엇인지는 생각해봐. 성공이 정말 너에게 가장 중요한 거야?"
그 말이 하늘의 마음에 깊이 박혔다. 정말 성공이 가장 중요한 걸까? 아니면 사람들과의 관계, 따뜻한 일상이 더 소중한 걸까?
며칠 후 서울 회사에서 정식으로 복직 요청이 왔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늘은 결정을 해야 했다.
할머니: "하늘아, 네 맘 편한 대로 해라. 할머니는 어떤 선택을 해도 응원할게."
하늘: "할머니..."
할머니: "다만 후회는 하지 마라.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솔직하게 생각해보고 결정해."
그날 밤 하늘은 뒷산에 올라가 별을 바라봤다. 서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수많은 별들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여기서의 한 달은 하늘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성공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사람들과의 진정한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작은 일상의 행복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를 깨달았다.
하지만 동시에 현실도 무시할 수 없었다. 서울의 안정된 직장, 경제적 문제,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
하늘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하늘: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 휴대폰에 문자가 왔다. 지민이였다.
"언니, 내일 학교에서 그림 전시회 해요. 언니 그림도 같이 전시하고 싶어요. 꼭 와주세요."
하늘은 미소를 지었다. 아이의 순수한 마음이 답을 주는 것 같았다.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5장. 새로운 시작
다음날 아침, 하늘은 마음을 정했다.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결정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진심을 따르기로 했다.
하늘은 휴대폰을 들고 김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늘: "부장님, 저 사직하려고 합니다."
김부장: "뭐라고? 하늘씨, 갑자기 왜? 승진도 코앞에 두고 있는데."
하늘: "죄송합니다.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았어요."
김부장: "잠깐, 성급하게 결정하지 말고 다시 생각해봐요."
하늘: "아니에요. 이미 충분히 생각했어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하늘은 후련했다. 무거웠던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할머니께 소식을 전하자 할머니는 환하게 웃으셨다.
할머니: "그래, 잘했어. 네가 행복한 게 가장 중요하지."
하늘: "할머니, 당분간 여기서 살아도 될까요?"
할머니: "당연하지. 우리 하늘이가 있으니 얼마나 든든한데."
준서에게도 소식을 전했다. 준서는 깜짝 놀라면서도 기뻐했다.
준서: "정말? 정말 여기 남을 거야?"
하늘: "응. 마을 프로젝트도 계속하고 싶고, 여기서 새로운 시작을 해보려고."
준서: "고마워. 정말 고마워."
하늘: "고마워할 건 내가 해야지. 오빠가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줬어."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지민이의 그림 전시회날, 하늘은 약속대로 학교에 갔다. 작은 체육관에 아이들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지민이는 하늘을 보자 달려와 안겼다.
지민: "언니! 제 그림 봤어요?"
하늘: "아직 못 봤어. 어디 있어?"
지민이는 하늘의 손을 잡고 자신의 작품 앞으로 갔다. 그림에는 마을 풍경과 함께 여러 사람들이 그려져 있었다. 할머니, 준서, 그리고 하늘도 있었다.
지민: "이게 우리 마을이에요. 이제 여기가 제 진짜 집이에요."
하늘은 가슴이 뭉클했다. 아이에게도 이곳이 새로운 보금자리가 되었구나.
교장선생님: "하늘씨, 좋은 소식이 있어요."
하늘: "무슨 소식이요?"
교장선생님: "마을 홍보 덕분에 서울에서 이주 문의가 세 가족이나 왔어요. 아이들과 함께 오신다고 하네요."
하늘: "정말요?"
교장선생님: "네, 학생 수가 늘어나면 폐교는 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늘은 너무 기뻤다. 작은 노력이 이런 결과를 가져올 줄은 몰랐다.
그로부터 몇 달 후, 마을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젊은 가족들이 몇 곳 더 이주해왔고, 준서의 카페도 손님이 늘었다. 하늘은 마을 커뮤니티 매니저로 일하면서 지속적으로 마을을 알리는 일을 했다.
가장 큰 변화는 하늘 자신이었다. 성과와 경쟁에만 매달렸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 소중히 여겼다. 매일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간, 지민이와 그림 그리는 시간, 준서와 함께 카페를 운영하는 시간 모두가 행복했다.
어느 봄날, 하늘과 준서는 뒷산을 함께 걸었다. 벚꽃이 흩날리는 아름다운 날이었다.
준서: "작년 이맘때만 해도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몰랐어."
하늘: "나도. 번아웃이 오히려 축복이었던 것 같아."
준서: "하늘아, 나랑 결혼해줄래?"
하늘은 깜짝 놀라 준서를 바라봤다. 준서는 진지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 "정말?"
준서: "응. 너와 함께 이 마을에서, 이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어."
하늘: "나도 그래."
두 사람은 서로를 껴안았다. 벚꽃잎이 두 사람 주위로 흩날렸다.
1년 후
하늘과 준서의 결혼식이 마을회관에서 열렸다. 작지만 따뜻한 결혼식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참석했고, 서울에서도 하늘의 옛 동료들이 왔다.
할머니: "우리 하늘이가 정말 예쁘다."
지민: "언니, 정말 공주님 같아요!"
하늘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이제 알 것 같았다.
결혼식 후 하늘은 마을 뒤편에 작은 집을 얻어 준서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할머니 집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매일 할머니께 안부를 드리고, 함께 식사를 하며 지냈다.
카페는 이제 마을의 명소가 되었다. 주말이면 서울에서 힐링을 찾아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지민이의 그림도 카페에 상설 전시되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학교도 폐교 위기를 넘겼다. 새로 이주한 가족들 덕분에 학생 수가 25명까지 늘어났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다시 마을에 울려 퍼졌다.
하늘: "지민아, 오늘은 뭘 그릴 거야?"
지민: "언니, 저 이제 중학생이에요. 그림은 취미로만 그려도 되죠?"
하늘: "물론이지. 지민이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돼."
지민이는 이제 마을에서 가장 밝은 아이가 되었다. 전학 온 다른 아이들의 적응도 도와주는 든든한 언니 역할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하늘은 할머니와 함께 마루에 앉아 노을을 바라봤다.
할머니: "후회 안 하니?"
하늘: "네? 뭘요?"
할머니: "서울 그만두고 여기 온 거."
하늘: "전혀요. 오히려 그때 용기를 낸 게 잘한 것 같아요."
할머니: "그래, 행복해 보인다. 예전에는 항상 바빠 보이고 초조해 보였는데, 지금은 정말 편안해 보여."
하늘: "할머니 덕분이에요. 할머니가 있어서 용기낼 수 있었어요."
할머니: "뭘, 네가 원래 착한 아이였지."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하늘은 이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꼈다. 성공보다 중요한 것, 돈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준서가 카페에서 돌아왔다.
준서: "오늘 카페에 신혼부부가 왔는데, 우리 마을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고 하더라."
하늘: "정말? 우리 마을이 결혼식 명소가 되는 건가?"
준서: "그럴지도. 하늘이 덕분에 마을이 유명해졌어."
하늘: "우리 모두 덕분이지."
그날 밤, 하늘은 일기를 썼다.
*'오늘도 평범하지만 행복한 하루였다. 아침에는 할머니와 함께 텃밭에서 토마토를 땄고, 오후에는 카페에서 손님들을 맞았다. 지민이가 새 그림을 보여줬는데 정말 실력이 늘었다. 저녁에는 준서와 함께 마을을 산책했다.
1년 전만 해도 이런 삶을 상상할 수 없었다. 매일 야근에 시달리고, 성과에만 매달리던 내가 이렇게 변할 줄 몰랐다. 물론 경제적으로는 예전보다 여유롭지 않다. 하지만 마음은 훨씬 풍요롭다.
진정한 성공이 무엇인지 이제 안다. 사람들과의 따뜻한 관계, 소소한 일상의 행복, 그리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 이것이 내가 찾던 진짜 행복이었다.'*
에필로그
하늘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SNS를 통해 퍼진 마을 이야기는 도시에 지친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이 되었다. 몇몇 사람들은 실제로 마을을 찾아와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하늘은 이제 '마음이 머무는 시간'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며 마을의 일상을 기록하고 있다. 매일의 소소한 행복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도시를 떠나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끔 서울의 옛 동료들이 찾아온다. 처음에는 하늘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했던 그들도 이제는 부러워한다. 하늘의 밝은 표정과 평온한 모습을 보며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고 한다.
하늘이 마을에 온 지 2년이 지난 지금, 청송 마을은 작지만 활기찬 공동체가 되었다. 학교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카페에는 도시에서 힐링을 찾아온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그리고 하늘은 매일 아침 할머니께 안부를 여쭙고, 지민이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준서와 함께 카페를 운영하며 평범하지만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때로는 천천히 가는 것이 더 빠른 길이고, 멈춰 서는 것이 더 멀리 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그리고 진정한 성공은 혼자 이루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것을.
하늘은 이제 안다. 마음이 머무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독자 여러분께
하늘이 내린 선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성공과 행복, 무엇이 더 중요할까요?
혹시 여러분도 바쁜 일상 속에서 잠깐 멈춰 서고 싶은 마음이 든 적이 있나요? 진정으로 소중한 것들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요?
댓글로 여러분의 일상 속 소소한 행복이나, 비슷한 고민을 나눠주세요. 때로는 나누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