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기억 뒤에 숨겨진 진실의 무게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혹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가 있다면, 그 기억들이 사라지는 것이 축복일까요, 아니면 저주일까요?
우리는 때때로 후회스러운 순간들을 지우고 싶어하지만, 정말로 그 기억들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여전히 같은 사람일까요?
성공한 심리치료사 이지원은 3개월 전 교통사고로 일주일간의 기억을 완전히 잃었습니다.
평온했던 일상은 한 환자의 의문의 죽음 소식과 함께 균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천천히 돌아오는 기억의 조각들은 그녀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어둡고 무거운 진실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스릴러를 넘어서 기억과 정체성, 죄와 벌, 그리고 용서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과거의 잘못이 현재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진실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중 무엇이 더 큰 고통인지, 그리고 진정한 속죄란 무엇인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완벽한 선악구조보다는 인간의 복잡한 내면과 도덕적 딜레마를 현실적으로 그려내려 했습니다.
각 장마다 새롭게 드러나는 반전과 함께, 마지막에는 독자 여러분도 지원과 같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입니다.
약 20분 정도의 읽기 시간이 소요됩니다. 집중해서 읽어보시면서, 만약 여러분이 지원의 상황에 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1장. 균열
차가운 11월 바람이 진료실 창문을 흔들었다.
이지원은 환자 차트를 정리하며 무의식적으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3개월 전 교통사고 이후로 이런 두통이 자주 찾아왔다.
"지원아."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친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김수현이 형사복 차림으로 서 있었다.
지원: "수현이? 갑자기 웬일이야?"
수현: "잠깐 얘기 좀 할까?"
수현의 표정이 평소와 달랐다. 지원은 차 한 잔을 건네며 소파에 앉았다.
수현: "강민수씨 기억나?"
지원: "강민수? 내 환자 중에 그런 이름이 있었나?"
수현: "3개월 전까지 네가 상담했던 환자야. 28살, 게임 개발자."
지원은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사고 당일과 그 전후 일주일의 기억은 여전히 깜깜했다.
지원: "그 사람이 어쨌는데?"
수현: "죽었어. 일주일 전에 자신의 원룸에서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발견됐어."
지원의 손에 든 찻잔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지원: "자살?"
수현: "겉보기엔 그래. 하지만 이상한 점들이 있어. 유서도 없고, 죽기 전까지 누군가와 계속 통화를 했던 흔적이 있어. 그리고..."
수현이 잠시 망설이더니 말을 이었다.
수현: "그의 마지막 상담 일정이 네 사고 당일이었어."
지원은 갑자기 숨이 막혔다.
지원: "그건 우연의 일치겠지. 나도 그날 기억이 없는걸."
수현: "그래서 온 거야. 혹시 치료 기록이라도 남아있는지 확인해보려고."
지원은 서둘러 컴퓨터를 켰다. 강민수라는 이름으로 검색했지만 파일이 열리지 않았다.
지원: "이상해. 파일이 손상됐다고 나와."
수현: "다른 방법은 없어?"
지원: "수기 노트가 있을 텐데..."
지원은 서랍을 뒤졌지만 해당 시기의 노트는 찾을 수 없었다.
수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현: "일단 기억나는 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 그리고 조심해."
지원: "조심하라니?"
수현: "그냥... 요즘 이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어."
수현이 떠난 후, 지원은 혼자 남아 컴퓨터 화면을 바라봤다.
손상된 파일. 사라진 노트. 우연치고는 너무 많았다.
집에 돌아가는 길, 지원은 현관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우편함에 낯선 명함 하나가 꽂혀 있었다.
'최영태 사립탐정'
명함 뒷면에는 손글씨로 '강민수 관련하여 할 말이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2장. 조각들
다음 날 오후, 지원은 명함에 적힌 주소를 찾아갔다.
낡은 오피스텔 7층, 복도 끝의 작은 사무실이었다.
최영태는 생각보다 말끔한 중년 남성이었다. 깔끔한 셔츠에 날카로운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최영태: "강민수가 저를 고용했습니다. 선생님을 조사하라고요."
지원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지원: "저를요? 왜?"
최영태: "그건 제가 궁금해하는 부분입니다."
최영태가 파일을 꺼냈다.
최영태: "강민수는 죽기 2주 전부터 제게 의뢰했어요. 이지원 선생님의 과거를 파헤쳐달라고."
지원: "어떤 과거를?"
최영태: "대학 시절 말이에요. 특히 10년 전 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지원은 목이 말랐다. 10년 전.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최영태: "제가 찾은 건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어요."
최영태가 오래된 신문 기사를 보여줬다.
'대학생 김하영씨 아파트에서 추락사... 타살 가능성 배제'
지원은 기사를 읽으며 점점 안색이 창백해졌다.
최영태: "이 김하영이라는 학생, 선생님과 같은 과였어요. 그리고 강민수와는 고등학교 동창이었습니다."
지원: "그게... 무슨 상관이..."
최영태: "강민수가 마지막으로 제게 말한 게 기억나네요. '드디어 진실을 알 것 같다'고 했어요. 그리고 이틀 뒤 죽었죠."
지원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지원: "이 모든 게 단순한 우연일 수도..."
최영태: "선생님. 강민수는 자살한 게 아닙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사고도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닐 가능성이 높아요."
지원은 사무실을 뛰쳐나왔다.
복도에서 숨을 고르며 휴대폰을 확인했다. 준호에게서 온 문자였다.
'늦어도 괜찮으니까 조심히 와. 저녁 준비해놨어.'
평소 같으면 따뜻하게 느껴졌을 문자가 오늘은 왜인지 감시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지원은 계속 뒤를 돌아봤다.
정말 누군가 따라오는 것 같았다. 검은색 세단이 계속 같은 거리를 유지하며 뒤따라오고 있었다.
지원은 급하게 지하철역으로 뛰어 들어갔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뒤를 확인했지만 검은 세단은 보이지 않았다.
집에 도착했을 때 준호가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준호: "왜 이렇게 늦었어? 연락도 안 되고."
지원: "미안. 급한 일이 있어서."
준호의 눈빛이 순간 예리해졌다.
준호: "무슨 일?"
지원은 최영태와 만난 일을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왜인지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지원: "그냥... 환자 상담이 길어져서."
그날 밤, 지원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옆에서 자고 있는 준호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10년 전 대학 시절. 김하영의 죽음. 강민수의 조사. 그리고 자신의 기억상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3장. 어둠 속에서
다음 날 아침, 수현에게서 연락이 왔다.
수현: "강민수의 컴퓨터에서 삭제된 파일들을 복원했어. 지금 올 수 있어?"
지원은 서둘러 경찰서로 향했다.
수현은 그녀를 조용한 회의실로 안내했다.
수현: "이걸 봐."
수현이 노트북 화면을 돌렸다.
화면에는 10년 전 대학교 신문 기사들과 김하영의 사진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지원의 사진들도 섞여 있었다.
수현: "강민수가 수집한 자료들이야. 보다시피 김하영 사건에 꽤 집착했던 것 같아."
지원은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김하영. 뚜렷한 이목구비의 예쁜 여학생이었다. 그런데 왜인지 낯익었다.
지원: "이 김하영이라는 학생... 나랑 어떤 관계였을까?"
수현: "그게 문제야. 공식 기록상으로는 단순히 같은 과 학생이었다고 되어 있어. 하지만 강민수가 수집한 자료를 보면..."
수현이 다른 파일을 열었다.
대학교 동아리 사진이었다. 심리학 연구회라는 동아리의 단체 사진에 젊은 지원과 김하영이 나란히 서 있었다.
수현: "친했던 것 같은데?"
지원은 사진 속 자신을 바라봤다.
활짝 웃고 있는 20대의 자신. 하지만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수현: "그런데 더 이상한 건 이거야."
수현이 보여준 것은 김하영의 일기장 스캔 파일이었다.
'지원 언니가 점점 이상해지고 있다. 교수님께 무슨 말을 한 건지, 내 연구 주제를 빼앗겨버렸다. 언니가 정말 내 친구가 맞나?'
'오늘 지원 언니와 큰 싸움을 했다. 언니는 나를 이용만 했던 거였나. 너무 배신감이 든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언니의 진짜 모습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
지원의 손이 떨렸다.
지원: "이건... 언제 쓴 거야?"
수현: "김하영이 죽기 일주일 전부터야."
그때 지원의 휴대폰이 울렸다. 준호였다.
준호: "여보, 지금 어디야? 점심 같이 먹으려고 했는데."
지원: "미안, 급한 일이 있어서. 저녁에 얘기해."
전화를 끊자 수현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수현: "지원아, 준호 오빠가 너랑 언제부터 만났지?"
지원: "5년 전에 만나서 결혼했어. 왜?"
수현: "혹시... 준호 오빠가 김하영 사건에 대해 뭔가 알고 있을 가능성은 없을까?"
지원은 고개를 저었다.
지원: "그럴 리 없어. 준호는 의대 출신이고, 우리 과랑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야."
수현: "그래도 한번 확인해보는 게..."
지원: "수현아. 준호는 내 남편이야. 의심하지 마."
그날 저녁, 지원은 집에 늦게 돌아왔다.
준호가 거실에서 와인을 마시며 기다리고 있었다.
준호: "오늘 하루 어떻게 보냈어?"
지원: "그냥... 환자들 보고."
준호가 와인잔을 내려놓으며 지원을 바라봤다.
준호: "지원아, 요즘 너 뭔가 숨기는 게 있지?"
지원: "무슨 소리야?"
준호: "강민수 사건 때문에 경찰서에 갔다 왔다며."
지원은 깜짝 놀랐다.
지원: "어떻게 알았어?"
준호: "수현이가 전화했어. 네가 무리하고 있다고."
준호가 소파에서 일어나 지원에게 다가왔다.
준호: "지원아, 과거 일은 그냥 묻어두는 게 어때? 네가 기억하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야."
지원: "무슨 뜻이야?"
준호의 눈빛이 순간 차가워졌다.
준호: "기억하지 못하는 게... 너에게는 더 행복할 수도 있다는 뜻이야."
그 순간 지원은 깨달았다. 준호가 뭔가를 알고 있다는 것을.
지원: "준호야, 너 혹시 김하영이라는 이름 알아?"
준호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준호: "왜 갑자기 그 이름을?"
지원: "대답해줘. 알고 있는 거 맞지?"
준호는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준호: "알고 있어. 그리고 그날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지원의 심장이 멈출 것 같았다.
지원: "그날 밤?"
준호: "지원아, 넌 김하영을 죽였어."
4장. 기억의 문
지원은 벽에 등을 기댔다.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지원: "그건... 거짓말이야."
준호: "10년 전 그날 밤, 너는 김하영과 옥상에서 싸웠어. 그리고 실수로 밀었지. 하영이가 떨어져 죽었어."
준호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지원에게는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로 들렸다.
지원: "왜... 왜 지금까지 말 안 했어?"
준호: "너를 지키려고. 너는 그날 밤 충격으로 기억을 잃었어. 그래서 안전했던 거야."
지원: "안전했다고? 내가 사람을 죽였는데?"
준호: "사고였어. 의도한 게 아니었다고."
지원: "어떻게 확신해?"
준호가 지원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준호: "왜냐하면... 내가 그날 밤 거기 있었거든."
지원은 준호를 멍하니 바라봤다.
지원: "거기 있었다고?"
준호: "나도 그 동아리 출신이야. 의대에서 심리학을 복수전공했거든. 그날 밤 동아리 모임 후에 너희가 싸우는 걸 봤어."
지원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지원: "그럼 넌... 처음부터 모든 걸 알고 나와 결혼한 거야?"
준호: "지원아..."
지원: "대답해!"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준호: "널 지키고 싶었어. 그때부터 쭉."
지원은 현관으로 뛰어갔다.
준호: "지원아, 어디 가?"
지원: "혼자 있고 싶어."
지원은 차를 몰고 한강변으로 향했다.
3개월 전 사고가 났던 바로 그 장소였다.
강변 도로에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그때였다. 갑자기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터지듯 아팠다.
하영: "지원 언니, 왜 이러는 거야?"
지원: "하영아, 넌 모르는 게 나아."
하영: "교수님께 거짓말한 것도 언니였지? 내 연구를 훔친 것도?"
지원: "그건..."
하영: "언니를 믿었는데!"
기억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10년 전 그날 밤. 옥상에서의 다툼. 김하영의 분노한 얼굴. 그리고...
하영: "언니가 그렇게 나올 거면 나도 가만있지 않을 거야!"
지원: "하영아, 진정해."
하영: "모든 사람들에게 언니의 진짜 모습을 말할 거야!"
김하영이 핸드폰을 꺼내려는 순간, 지원이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지원: "아!"
지원이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기억이 완전히 돌아왔다. 그날 밤의 모든 것이.
김하영은 떨어진 게 아니었다. 지원이 밀었다. 의도적으로.
그리고 3개월 전 이곳에서도...
강민수: "지원 선생님, 이제 모든 걸 알아버렸어요."
강민수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강민수: "김하영 언니의 죽음 진상을. 그리고 선생님이 진짜 어떤 사람인지도."
지원: "민수씨, 진정하고 얘기해요."
강민수: "얘기요? 10년 동안 거짓말로 살아온 선생님과 무슨 얘기를 하라고요?"
그날 밤 강민수는 지원을 협박했다.
진실을 폭로하겠다고. 지원의 모든 것을 무너뜨리겠다고.
그리고 지원은... 또 다시 선택했다.
강민수의 컵에 수면제를 넣었다. 치료실에 비치된 약품을 이용해서.
지원: "아니야... 아니야..."
지원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기억은 잔혹하게 계속 이어졌다.
의식을 잃은 강민수를 그의 원룸까지 데려가서 더 많은 약을 먹인 것. 자살로 위장한 것.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일부러 교통사고를 낸 것. 기억을 잃은 척하기 위해서.
지원: "내가... 내가 정말..."
지원은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냈다.
수현의 번호를 눌렀다.
지원: "수현아..."
수현: "지원아? 무슨 일이야? 목소리가 이상한데."
지원: "모든 걸... 기억했어."
전화 너머로 수현의 숨소리가 들렸다.
수현: "지금 어디야?"
지원: "한강변이야. 사고 났던 곳."
수현: "움직이지 마. 지금 간다."
전화를 끊고 지원은 강물을 바라봤다.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지난 10년간의 성공도, 행복한 결혼도, 심지어 자신이 누구인지도.
5장. 진실의 무게
수현이 도착했을 때 지원은 강변 벤치에 앉아 멍하니 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현: "지원아."
수현이 옆에 앉으며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지원: "모든 걸 기억해냈어. 김하영도... 강민수도... 내가 죽였어."
지원의 목소리는 텅 비어있었다.
수현은 말없이 지원의 이야기를 들었다.
10년 전의 진실. 3개월 전의 진실. 그리고 그 사이의 모든 거짓들.
수현: "그럼 준호 오빠는?"
지원: "공범이나 다름없어. 나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모든 걸 숨겼으니까."
지원이 고개를 들어 수현을 바라봤다.
지원: "체포해."
수현: "지원아..."
지원: "내가 자수할게. 더 이상 거짓으로 살 수 없어."
수현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수현: "정말 그게 답일까?"
지원: "다른 답이 있어? 나는 두 사람을 죽였어. 김하영은 실수였을지도 모르지만, 강민수는... 명백한 살인이었어."
그때 검은색 세단 한 대가 다가왔다.
차에서 내린 것은 최영태였다.
최영태: "두 분 다 여기 계시네요."
지원이 놀라며 일어났다.
지원: "어떻게 여기를..."
최영태: "추적했습니다. 강민수가 마지막에 남긴 단서 덕분에요."
최영태가 핸드폰을 꺼내 보여줬다.
최영태: "강민수는 죽기 전에 저에게 메시지를 남겼어요. '만약 내가 죽으면 이지원의 휴대폰 GPS를 확인하라'고요."
지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최영태: "그날 밤 선생님의 휴대폰이 강민수의 집 근처에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사고 당일에도."
최영태가 한 걸음 다가왔다.
최영태: "강민수는 선생님을 위해 죽었습니다."
지원: "무슨 뜻이에요?"
최영태: "강민수는 김하영을 사랑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하지만 하영이는 선생님만 따랐죠. 하영이가 죽은 후, 강민수는 복수를 다짐했습니다. 선생님을 무너뜨리겠다고."
최영태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최영태: "하지만 조사를 하면서 강민수는 깨달았어요. 하영이가 선생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하영이의 일기를 다시 보면, 배신감 뒤에 숨겨진 애정을 알 수 있어요."
지원은 숨이 막혔다.
지원: "하영이가... 나를?"
최영태: "네. 하영이는 선생님을 좋아했어요. 친구 이상으로. 그래서 더 배신감이 컸던 거죠."
최영태가 오래된 편지를 꺼냈다.
최영태: "이건 하영이가 죽기 전날 썼지만 보내지 못한 편지예요. 강민수가 하영이 짐을 정리하다가 발견했어요."
지원은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받았다.
지원 언니에게
언니에게 화가 나지만, 동시에 너무 사랑해요. 언니가 내 연구를 가져간 것도, 교수님께 거짓말을 한 것도 모두 알고 있어요. 하지만 언니라면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고 싶어요.
언니는 어릴 때부터 혼자 모든 걸 짊어지려고 했죠. 부모님도 없이 혼자서 장학금 받아가며 공부하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어요.
내가 언니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화가 아니라 사랑한다는 말이었어요. 내 연구 따위는 언니가 가져가도 상관없어요. 언니가 성공했으면 좋겠어요.
내일 언니에게 이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그리고 함께 새로운 시작을 했으면 해요.
언니를 사랑하는 하영이가
편지를 읽은 지원은 주저앉았다.
지원: "하영이가... 나를 용서하려고 했다는 거예요?"
최영태: "강민수도 이 편지를 읽고 깨달았어요. 복수가 아니라 용서가 하영이의 마지막 마음이었다는 걸. 그래서 강민수는 선택했습니다."
지원: "무슨 선택을?"
최영태: "선생님의 고백을 듣고 자신이 죽기로요. 선생님이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것이 진짜 벌이라고 생각했나 봐요."
수현이 입을 열었다.
수현: "그럼 강민수는..."
최영태: "자살이 맞습니다. 다만 이지원 선생님의 고백을 듣고 내린 선택이었죠."
지원은 한참 동안 울었다.
10년 전의 그날 밤. 만약 하영이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면. 만약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3개월 전. 만약 강민수의 진짜 의도를 알았다면.
모든 것이 달라졌을 텐데.
지원: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원이 수현을 바라봤다.
수현: "그건... 네가 결정할 일이야."
지원은 일어서서 한강을 바라봤다.
진실은 무거웠다. 하지만 거짓보다는 견딜 만했다.
지원: "자수할게요. 하영이와 민수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진실로 사과하고 싶어요."
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현: "함께 갈게."
에필로그
6개월 후.
지원은 교도소 면회실에서 준호와 마주 앉았다.
준호: "잘 지내?"
지원: "응. 여기서 상담 봉사를 하고 있어.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니까 보람 있어."
준호의 눈가에 주름이 깊어져 있었다.
준호: "미안해, 지원아. 진실을 말했어야 했는데."
지원: "아니야. 나도 이해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은 마음."
지원이 준호의 손을 잡았다.
지원: "이혼서류에 사인해줘서 고마워.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준호: "지원아, 나는..."
지원: "우리 모두 새로운 시작이 필요해. 진실 위에서 말이야."
면회 시간이 끝나고 지원은 혼자 창밖을 바라봤다.
죄책감은 여전했다. 아마 평생 갈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거짓으로 도망치지는 않을 것이다.
하영이와 민수에게 진정한 사과를 하는 길.
그것은 진실을 받아들이고 남은 삶을 의미 있게 사는 것이었다.
지원은 일기장을 펼쳤다. 매일 쓰는 진실한 고백들.
하영아, 민수야. 오늘도 너희를 기억하며 하루를 시작해. 너희가 용서해준 만큼, 나도 다른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갈게.
창밖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새로운 내일을 위해.
독자 여러분께
지원이 내린 마지막 선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진실을 받아들이고 죗값을 치르는 것이 정말 최선의 선택이었을까요?
여러분이라면 10년 전 그날 밤, 하영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봤을 것 같나요?
그리고 강민수와의 마지막 만남에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요?
기억과 진실, 그리고 용서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댓글로 나눠주세요.
어느 부분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